“AI는 인원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역량을 확장하는 일이다.” HR 애널리스트 조시 버신(Josh Bersin)이 2026년 2월 HR Executive 기고에서 던진 문장입니다. 그가 이끄는 조시 버신 컴퍼니(The Josh Bersin Company)는 2026년 1월, The Superworker Organization: AI Goes Enterprise—HR and Leadership Imperatives for 2026 리포트를 내며 “내 경력을 통틀어 가장 극적인 HR의 전환이 2026년에 일어날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개인의 업무를 거들던 ‘코파일럿(copilot)’의 시대가 저물고, 워크플로 전체를 스스로 굴리는 ‘슈퍼에이전트(superagent)’의 시대가 열린다는 진단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전환의 실체가 무엇인지, 숫자가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HR이 당장 손대야 할 세 가지가 무엇인지를 짚어봅니다.
코파일럿은 왜 성과표에 남지 않았나
지난 몇 년간 대부분의 기업이 걸어온 길은 비슷합니다. 채용팀에 공고문 작성 도구를 붙이고, 교육팀에 콘텐츠 생성 도구를 붙이고, 인사기획팀에 요약·번역 도구를 붙였습니다. 개별 담당자는 분명 빨라졌습니다. 공고문 초안 작성이 두 시간에서 20분으로 줄고, 회의록 정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개선분은 조직의 성과표 어디에도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버신은 그 이유를 명확히 짚습니다. 코파일럿이 만들어낸 것은 개인 단위의 생산성 향상이었고, 개인 단위의 절감은 비즈니스 가치로 번역되는 경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담당자 한 사람이 하루 40분을 아꼈다고 해서, 채용 리드타임이 줄거나 입사자의 조기 이탈률이 낮아지지는 않습니다. 아낀 40분은 대개 다른 잡무로 채워집니다. 업무의 흐름 자체는 그대로 두고 각 지점에 도구만 얹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비용 구조의 변화가 압박을 더합니다. 버신은 AI 인프라 비용이 오르면서 가격 모델이 라이선스 단위에서 소비량(토큰) 단위로 옮겨가고 있고, 그만큼 ROI 정당화가 훨씬 엄격해질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좌석 수만큼 결제하던 시대에는 ‘일단 다 깔아보자’가 가능했지만, 쓴 만큼 청구되는 시대에는 ‘이 워크플로가 무슨 결과를 냈는가’를 답해야 합니다. 도구를 늘리는 전략의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는 셈입니다.
2026년 우리가 옮겨가는 새 모델은 에이전트에서 ‘슈퍼에이전트’로의 이동이다. 슈퍼에이전트는 워크플로 전체를 굴린다.
— Josh Bersin, From copilots to superagents: HR’s 2026 shift, HR Executive (2026. 2. 26.)
슈퍼에이전트는 도구가 아니라 ‘구조’다
조시 버신 컴퍼니는 슈퍼에이전트를 “기업 전체에서 일이 처리되는 방식을 재설계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시스템”으로 정의합니다. 핵심은 ‘자율’보다 오히려 ‘결과 지향’이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기존 에이전트가 ‘공고문을 써라’는 과업을 받았다면, 슈퍼에이전트는 ‘이 포지션을 채워라’는 결과를 받습니다. 그 사이에 있는 직무기술서 작성, 소싱 채널 선택, 스크리닝, 면접 일정 조율, 처우 협상 자료 준비, 온보딩 체크리스트 발송까지 서로 연결된 여러 프로세스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 처리합니다.
버신은 이 변화를 자동차에 빗댑니다. 모든 것을 사람이 조작하던 수동 운전에서, 차선 유지와 크루즈 컨트롤이 거드는 운전자 보조 단계를 거쳐, 목적지를 입력하면 알아서 가는 자율주행으로 넘어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마지막 단계에서 운전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다만 운전자가 하는 일이 ‘핸들 조작’에서 ‘목적지 결정과 상황 판단’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슈퍼에이전트 도입은 소프트웨어 구매 결정이 아니라 아키텍처 설계 결정입니다. 버신 컴퍼니가 2026년 리포트에서 제시한 11가지 과제 가운데 ‘AI 아키텍처 구축’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리포트는 흥미로운 경고를 덧붙입니다.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에이전트를 몇 개 붙였느냐가 아니라 데이터의 품질·적시성·보안이라는 것입니다. 낡고 조각난 인사 데이터 위에 에이전트를 백 개 얹어봐야, 조각난 답이 백 배 빠르게 나올 뿐입니다.
실제 현장에서 이 함정은 흔합니다. 직급 체계가 법인마다 다르게 관리되고, 조직도 마스터가 두 벌 존재하며, 퇴사 사유 코드가 담당자마다 다르게 입력되는 회사에서 ‘AI 인력 분석’을 도입하면, AI는 그 불일치를 그럴듯한 문장으로 덮어버립니다. 오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읽기 좋은 오답이 됩니다. 데이터 정합성이 이제는 IT 위생 문제가 아니라 HR의 성능 문제가 된 것입니다.
숫자로 본 HR 조직의 재편
조시 버신 컴퍼니가 2026년 1월 21일 발표한 리포트 요약은 몇 개의 굵은 숫자를 제시합니다. 우선 코어 HR 인력이 30% 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버신은 “에이전트와 슈퍼에이전트가 전통적 HR 역할의 최대 30%를 없앨 것이며, 그 덕분에 HR 담당자는 채용과 코칭에 시간을 쓸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뒷문장이 중요합니다. 이 예측의 결론은 ‘HR이 작아진다’가 아니라 ‘HR이 하는 일이 바뀐다’입니다.
영역별 편차도 큽니다. 리포트는 교육·개발(L&D) 업무의 60~70%가 자동화 가능하다고 봅니다. 콘텐츠 큐레이션, 과정 설계 초안, 학습 이력 관리, 수료 안내처럼 규칙이 분명하고 반복적인 업무가 이 영역에 몰려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리포트는 HR 전반에서 100건이 넘는 에이전트 애플리케이션이 확인됐고, 이들이 슈퍼에이전트 계열(family)로 묶이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HR과 IT를 통틀어 30개 이상의 새로운 직무명이 생겨났다고 전합니다.
한편 HR Executive가 전한 버신의 강연 내용에 따르면, 현재 HR 활동의 약 40%가 자동화 가능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여기서 ‘역할 30%’와 ‘활동 40%’는 서로 다른 대상을 재는 숫자라는 점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앞은 자리(role)의 수, 뒤는 업무 행위(activity)의 비중입니다. 활동의 40%가 자동화된다고 해서 사람의 40%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자리가 줄어든다고 해서 그 업무가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재편이 ‘축소’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버신에 따르면 HR 조직은 전체 인력보다 약 60% 빠른 속도로 확대돼 왔고, 오늘날 HR 안에는 250개가 넘는 직무명과 100개에 가까운 기능이 존재합니다. 다른 관측에서는 통상적인 HR 부서가 약 95개의 파편화된 기능을 안고 있으며, 그 결과 HR이 전략 조직이 아니라 요청을 처리하는 ‘이행 센터(fulfilment center)’처럼 작동한다고 지적합니다. 즉 지금의 HR은 사람이 부족해서 느린 게 아니라, 기능이 지나치게 잘게 쪼개져서 느립니다. 슈퍼에이전트가 겨냥하는 것이 바로 이 파편화입니다.
감원이 아니라 ‘슈퍼워커’
버신이 2025년부터 밀고 있는 개념이 ‘슈퍼워커(Superworker)’입니다. 정의는 단순합니다. AI의 지원과 힘을 받는 직원. 그는 슈퍼워커를 “AI 시스템 활용을 최적화하는 법을 익혀 자신의 가치와 생산성, 산출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사람”으로 설명하며, “이것은 AI로 일자리를 없애거나 비용을 줄이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긋습니다.
AI는 인원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역량을 확장하는 일이다.
— Josh Bersin, HR Executive (2026)
이 구분이 왜 실무적으로 중요할까요? 조직이 AI를 ‘비용 절감 프로젝트’로 규정하는 순간, 현장의 반응이 정반대로 굳어지기 때문입니다. 자기 일을 없앨지도 모르는 도구를 열심히 학습할 직원은 없습니다. 담당자는 자기 업무의 진짜 병목을 숨기고, 자동화 대상 목록에서 빠지려 애씁니다. 반대로 AI를 ‘네 일의 상한을 올려주는 장비’로 규정하면, 자기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동화 설계자가 됩니다. 같은 기술을 도입해도 결과가 갈리는 지점은 대개 기술이 아니라 이 프레이밍입니다.
버신 컴퍼니는 슈퍼워커 조직을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더 높은 직원 몰입도와 인당 매출·이익을 달성하는 기업”으로 정의합니다. 여기서 두 지표가 나란히 놓인 점에 주목할 만합니다. 인당 생산성만 올리고 몰입도가 무너지는 조직은 슈퍼워커 조직이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6년 리포트는 11가지 과제 중 하나로 ‘직원을 돌보라’를 명시하며, 몰입과 헌신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함께 경고합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조직이 감당해야 할 피로도 함께 커집니다.
실천 ① 도구를 사기 전에 워크플로를 다시 그려라
가장 흔한 실패 패턴은 ‘현행 프로세스 + AI’입니다. 결재 단계가 일곱 개인 프로세스에 AI를 붙이면 결재 일곱 단계가 조금 빨라질 뿐입니다. 버신이 “일을 재설계하라”고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실제로 그가 2025년에 제시한 다섯 가지 과제의 첫 항목도 ‘일과 직무, 조직 모델을 재설계하라’였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이렇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먼저 HR 업무를 ‘부서’가 아니라 ‘직원이 겪는 여정’ 단위로 다시 그립니다. 예컨대 ‘입사’라는 여정 하나에 채용팀·인사운영·총무·IT·교육팀이 각각 다른 시스템에서 작업하고 있다면, 그 경계마다 대기 시간과 재입력이 발생합니다. 슈퍼에이전트가 성과를 내는 지점은 개별 작업이 아니라 바로 이 경계입니다. 따라서 자동화 후보를 고를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 아니라 ‘부서를 넘나드는 횟수가 많은 흐름’을 먼저 보는 편이 낫습니다.
다음으로, 각 여정에 ‘결과 지표’를 하나씩 붙입니다. 채용이라면 처리 건수가 아니라 입사 90일 내 정착률, 교육이라면 수료율이 아니라 현업 적용도처럼요. 슈퍼에이전트는 결과를 목표로 받는 시스템이므로, 결과가 정의되지 않은 워크플로에는 애초에 붙일 자리가 없습니다. 도구 선정 회의를 열기 전에 이 지표부터 합의하는 편이, 결국 도입 후의 ROI 논쟁을 줄입니다.
실천 ② 관리자를 ‘슈퍼매니저’로 다시 정의하라
기술이 도입돼도 조직이 바뀌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중간 관리자층에 있습니다. HR Executive가 정리한 버신의 논지에 따르면, 슈퍼워커 조직에는 ‘슈퍼매니저(super manager)’가 필요합니다. 위에서 정한 방식을 하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실험과 창의적 문제 해결을 허용하는 관리자입니다. AI가 시도의 비용을 낮춰 놓았으니, 현장 팀이 자기 업무에 맞는 해법을 직접 설계하도록 권한을 넘겨야 한다는 것이죠.
같은 맥락에서 버신 컴퍼니는 2026년 과제 중 하나로 ‘시민 개발자(citizen developer)되기’를 꼽습니다. 이제 시스템 조정은 코드가 아니라 프롬프트로 이뤄지므로, IT 부서만이 아니라 업무 담당자 스스로 끊임없이 시스템을 튜닝하게 된다는 관측입니다. 이는 관리자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팀원이 만든 자동화를 ‘승인’하는 역할에서, 어떤 실험을 얼마나 빠르게 돌릴지 속도와 안전선을 설계하는 역할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전환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관리자가 여전히 ‘내가 아는 방식’을 기준으로 팀원의 결과물을 평가하고, AI로 만든 산출물에 대해서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댑니다. 그래서 슈퍼매니저 전환은 교육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리더의 행동을 실제로 관찰하고 되먹임하는 장치를 필요로 합니다. 다면진단(360도 피드백)에 ‘새로운 방식의 시도를 장려하는가’, ‘실패한 실험을 어떻게 다루는가’ 같은 문항을 넣는 것만으로도 조직이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버신의 표현대로, 이 전환은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리더십 과제입니다.
AI 기반 조직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리더십의 과제다.
— Josh Bersin (인용), HR Executive (2026. 3. 3.)
실천 ③ 인재를 ‘분포’가 아니라 ‘밀도’로 보라
세 번째는 평가와 인재관에 관한 것입니다. 버신은 기존의 등급 체계, 특히 정규분포를 전제한 상대평가가 AI 시대의 성과 편차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그가 드는 예가 인상적입니다. 뛰어난 엔지니어 한 명이 평균적인 동료의 10배 산출을 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런 편차 앞에서 ‘상위 10%, 중위 70%, 하위 20%’로 사람을 나누는 방식은 정보를 만들어내기보다 지워버립니다.
대안으로 그가 제시하는 개념이 탤런트 덴시티(talent density), 즉 인재 밀도입니다. 사람을 분포에 끼워 맞추는 대신, 예외적 기여자를 식별하고 그들이 더 큰 레버리지를 갖도록 배치하는 접근입니다. 실제로 2025년 다섯 가지 과제에도 ‘인재 밀도를 높이는 동적 인재 모델을 만들라’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HR 관점에서 이 전환은 두 가지 실무 과제로 번역됩니다. 첫째,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입니다. AI가 산출량을 평준화하는 영역에서는 산출량 자체가 변별력을 잃습니다. 대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검증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능력처럼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판단’이 평가의 중심으로 올라옵니다. 둘째,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입니다. 밀도는 채용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이미 있는 인재를 레버리지가 큰 자리로 옮길 때 빠르게 올라갑니다. 사내 이동과 프로젝트 로테이션이 인재 전략의 앞자리로 오는 이유입니다.
버신은 HR의 책임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사람들을 업스킬링하고,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회사에 확신을 주는 것.” 도구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 HR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HR 담당자를 위한 시사점
- 도구 목록이 아니라 워크플로 지도를 먼저 그려라 — 자동화 후보를 ‘오래 걸리는 작업’이 아니라 ‘부서 경계를 여러 번 넘는 흐름’에서 고르세요. 슈퍼에이전트의 성과는 작업 내부가 아니라 경계에서 나옵니다.
- 데이터 정합성을 HR의 성능 과제로 취급하라 — 에이전트 개수보다 데이터 품질·적시성·보안이 성능을 좌우합니다. 조직도·직급 체계·퇴사 사유 코드처럼 기본 마스터부터 정리하지 않으면, AI는 오류를 더 그럴듯하게 포장할 뿐입니다.
- AI를 ‘감원 프로젝트’로 규정하지 마라 — 프레이밍이 곧 참여율입니다. 자기 업무의 병목을 가장 잘 아는 담당자가 설계자로 참여할 때만 실질적 재설계가 일어납니다.
- 관리자 행동을 측정 대상에 넣어라 — ‘실험을 장려하는가’, ‘실패한 시도를 어떻게 다루는가’를 다면진단 문항으로 만들면, 슈퍼매니저 전환이 구호에서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내려옵니다.
- 평가 기준을 산출량에서 판단력으로 옮겨라 — AI가 산출을 평준화할수록 문제 정의·검증·타인의 생산성 향상 같은 역량이 변별력을 갖습니다. 상대평가 분포를 고집하기 전에, 무엇을 재고 있는지부터 점검하세요.
참고 자료
- 2026 Imperatives: The Superworker Organization — The Josh Bersin Company (2026)
- In 2026 AI-Powered Superagents Will Radically Change HR — The Josh Bersin Company 보도자료 (2026. 1. 21.)
- From copilots to superagents: HR’s 2026 shift — Josh Bersin, HR Executive (2026. 2. 26.)
- The superworker org: Why HR must redesign work, not just adopt AI — Josephine Tan, HR Executive (2026. 3. 3.)
- The Rise of the Superworker — Josh Bersin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