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자리는 제도가 아니라 관리자가 만든다

HR Insight
2026.8.5

“일의 질을 끌어올리는 변화는, 새 고용법이 손대는 영역이 아니다.” 영국 인사전문가 협회 CIPD가 2026년 7월 발간한 Good Work Index 2026이 내린 결론입니다. 영국 정부가 고용권리법(Employment Rights Act 2025)을 본격 시행하며 계약 안정성과 노조 대표성을 손보는 시점에, 정작 5,074명의 노동자 데이터가 가리킨 것은 제도가 아니라 라인관리자·리더십·성장 기회·일의 의미였습니다. 9년째 이어진 이 조사는 ‘좋은 일자리’가 어디서 만들어지는지를 매년 같은 잣대로 재어 왔고, 올해 결과는 HR이 어디에 예산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이례적으로 단호합니다.

9년째 같은 잣대로 재어 온 ‘일의 질’

Good Work Index는 CIPD와 여론조사기관 YouGov가 공동 수행하는 UK Working Lives 서베이의 아홉 번째 웨이브입니다. 2025년 12월부터 2026년 2월까지 영국 노동자 5,074명을 조사했고, 전체 취업자를 대표하도록 가중치를 적용했습니다. 리포트는 ‘일의 질’을 일곱 개 차원 — 보상과 복리후생, 계약, 워라밸, 직무설계와 일의 성격, 직장 내 관계, 발언권과 대표성, 건강과 웰빙 — 으로 나누어 측정합니다.

한국 HR에 이 조사가 특별한 이유는 측정 방식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조직문화 진단은 ‘만족도’에서 멈춥니다. 반면 이 리포트는 일의 질 각 차원을 다섯 가지 비즈니스 성과에 직접 연결합니다. ① 직무만족, ② 회사를 남에게 추천할 의향, ③ 요구받지 않아도 더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자발적 노력), ④ 팀·부서 개선을 위한 혁신 제안, ⑤ 향후 12개월 내 자발적 퇴사 가능성. 채용·동기부여·리텐션이라는 HR의 세 축과 정확히 맞물리는 지표들입니다.

전체 응답의 기본선은 이렇습니다. 직무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70%, 삶 전반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65%. 회사를 추천하겠다는 응답은 53%, 요구 이상으로 일하겠다는 응답은 49%, 개선 제안을 한다는 응답은 57%였습니다. 1년 내 이직할 것 같다는 응답은 18%,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3%였습니다. 나쁘지 않아 보이는 숫자지만, 이 평균을 무엇이 갈라놓는지를 들여다보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CIPD가 사용하는 일의 질 7가지 차원(보상·계약·워라밸·직무설계·관계·발언권·건강)을 원형으로 배치한 인포그래픽
CIPD가 ‘좋은 일’을 재는 일곱 개 차원. 올해 조사에서 다섯 가지 비즈니스 성과 모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라인관리, 리더십, 스킬 개발 기회, 그리고 일의 의미였습니다.

같은 회사, 다른 관리자: 38%와 89%의 거리

이번 리포트에서 가장 극적인 그림은 라인관리자 품질에 관한 것입니다. CIPD는 관리자에 대한 아홉 개 문항으로 지수를 만들고, 응답자를 네 개 사분위로 나눴습니다. 상사를 가장 낮게 평가한 하위 25%부터 가장 높게 평가한 상위 25%까지. 그리고 이 사분위를 앞의 다섯 가지 성과에 겹쳐 보았습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하위 사분위 → 상위 사분위 순).

  • 직무만족: 38% → 69% → 81% → 89%
  • 회사 추천 의향: 21% → 51% → 71% → 81%
  • 자발적 노력: 33% → 44% → 57% → 65%
  • 혁신 제안: 46% → 52% → 65% → 75%
  • 이직 의향 낮음: 45% → 60% → 71% → 73%

같은 나라, 같은 노동시장, 같은 고용법 아래에서 직무만족이 38%와 89%로 갈립니다. 51%포인트의 격차입니다. 급여 인상이나 복지 제도로 51%포인트를 움직이려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면, 이 숫자의 무게가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관리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디서 점수를 잃을까요. 세부 문항을 보면 패턴이 뚜렷합니다. ‘나를 공정하게 대한다’ 78%, ‘인간으로서 존중한다’ 77%, ‘문제가 생기면 지원해 준다’ 75% — 인격적 태도는 높습니다. 반면 ‘일을 잘하도록 도와준다’ 59%, ‘나의 학습과 성장을 지원한다’ 57%, ‘내 일에 유용한 피드백을 준다’ 57% — 육성 역량은 열 명 중 여섯 명에 못 미칩니다. 리포트는 이를 두고 “유용한 피드백을 준다, 일을 잘하게 돕는다, 학습을 지원한다에 동의하는 직원이 열에 여섯이 안 된다”고 짚습니다.

착한 상사와 유능한 상사는 다릅니다. 많은 조직의 리더십 교육이 소통·경청·존중에 집중하는 동안, 정작 성과와 직결되는 피드백·코칭·성장 설계가 비어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라인관리자가 사람을 제대로 관리할 핵심 소프트스킬을 갖추도록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것이, 긍정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여는 열쇠다.”
— Marek Zemanik, Good Work Index 2026 (CIPD, 2026)

면담 빈도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성과를 논의하기 위해 상사와 만나는 빈도가 높을수록 관리자 평가가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15%는 성과 면담을 한 번도 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더 뼈아픈 것은 그중 절반에 가까운 49%가 그 상태를 ‘적절하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리포트는 이를 “업무 구조로부터의 심각한 단절”로 해석합니다. 면담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없어도 아쉽지 않을 만큼 관계가 얇아진 상태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의미’는 복지가 아니라 성과 변수다

리포트가 다섯 가지 성과 전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꼽은 것은 네 가지입니다. 라인관리, 리더십, 스킬 개발 기회, 그리고 일의 의미. 앞의 셋은 예상 가능한데, 마지막 항목이 함께 올라온 것이 이 조사의 특징입니다.

CIPD는 일의 의미를 세 문항으로 측정합니다. 조직에 유용한 일을 한다는 느낌,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한다는 느낌, 조직의 핵심 목적에 영감을 받는가. 이 세 문항에 동의한 직원은 만족도·추천 의향·자발적 노력·혁신 제안·잔류 의향 다섯 지표 모두에서 유의하게 높았습니다. 리포트의 HR 권고 목록에 “조직의 목적을 명확히 표현하고, 직무를 그 목적을 중심으로 설계하라”가 들어간 이유입니다.

주목할 배경 흐름도 있습니다. 일의 중심성(work centrality) —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사람들이 얼마나 크게 두는가 — 는 Good Work Index 시리즈 내내 꾸준히 하락해 왔습니다. 일이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흐름과, 그럼에도 일의 의미가 성과를 좌우한다는 발견은 모순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에 삶을 통째로 걸지 않는 세대일수록,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가 몰입의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성장 기회 쪽 수치는 더 냉정합니다. ‘내 일이 스킬을 개발할 좋은 기회를 준다’에 동의한 비율은 54%, ‘좋은 승진 전망을 준다’는 36%에 그쳤습니다. 고령층 노동자에서는 승진 전망 동의율이 23%까지 떨어졌고, 여성은 두 문항 모두에서 낮았습니다(파트타임 비중과 연결됩니다). 학사 이상 학력자의 33%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과잉자격이라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은 뽑아 두었는데 쓸 자리를 설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교육 참여 자체는 76%로 낮지 않지만, 격차가 문제입니다. 지난 12개월간 어떤 형태의 교육도 받지 못한 직원이 19%였고, 조직 규모별로 갈렸습니다. 직원 2~49명 기업은 27%가 교육 전무, 250명 이상 조직은 13%. 공공부문 참여율은 89%, 민간은 73%였습니다.

생성형 AI를 월 1회 이상 사용하는 직원 34%와 그중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66%의 격차를 대비시킨 인포그래픽
AI는 도입됐지만 교육은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월 1회 이상 사용자 중 3분의 2가 어떤 AI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AI는 들어왔는데, 교육은 오지 않았다

2026년판에서 신설된 문항이 생성형 AI입니다. 결과는 한국 조직에도 그대로 겹칩니다.

사용 빈도부터 보면, 52%는 업무에 AI를 전혀 쓰지 않습니다. 연 몇 회가 11%, 월 1회 7%, 주 1회 16%, 매일 11%. 월 1회 이상 사용자를 합치면 34%입니다. 직군별 편차는 극심해서 관리자·임원은 45%, 전문직은 51%가 월 1회 이상 쓰는 반면, 생산·단순직군은 한 자릿수에 머뭅니다.

문제는 교육입니다. 현재 직무에서 AI를 쓰는 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는 응답은 13%,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78%였습니다. 실제로 쓰는 사람들만 따로 떼어 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월 1회 이상 사용자 34% 가운데 66%가 어떤 AI 교육도 받지 못했고, 매일 쓰는 11% 중에서도 60%가 무교육 상태였습니다. 가장 많이 쓰는 사람조차 독학으로 버티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AI에 대한 평가는 미지근합니다. 사용자 2,351명 기준으로 ‘일을 더 빨리 끝낸다’ 54%, ‘생산성이 올랐다’ 42%, ‘정신적 부담이 줄었다’ 41%,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든다’ 39%, ‘반복 업무를 자동화했다’ 37%. 반면 ‘출력의 정확성을 신뢰한다’는 25%에 그쳤고, 45%는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일이 더 즐거워졌다’는 23%, ‘의사결정을 AI에 의존한다’는 13%(비동의 70%)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용 빈도에 따른 인식 차이입니다. 매일 쓰는 사람의 78%가 업무 속도 향상을, 69%가 생산성 향상을, 44%가 일의 즐거움 증가를 보고했습니다. 가끔 쓰는 사람(연 몇 회)에서는 각각 26%, 16%, 6%로 떨어집니다. 리포트는 인식이 좋아져서 많이 쓰는 것인지, 많이 써서 인식이 좋아진 것인지는 이 데이터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신중하게 선을 긋습니다. 다만 교육을 받은 사용자가 대부분의 항목에서 더 긍정적으로 답했다는 점 — 그리고 ‘출력을 신뢰한다’와 ‘의사결정을 의존한다’ 두 항목만은 교육 여부가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는 점은 시사적입니다. 교육은 활용도를 높이지만, 맹신을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일의 질이 무너지는 지점: 업무량, 갈등, 건강

리포트의 후반부는 일의 질이 어디서 붕괴하는지를 다룹니다. 전체의 30%가 업무량이 과도하다고 답했고, 이는 자원 부족과 직결됐습니다. 필요한 교육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답에서 가장 큰 격차가 나타났습니다.

업무량은 성과보다 건강을 먼저 무너뜨립니다. 업무 부담이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응답을 조건별로 보면 격차가 선명합니다.

  •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음 70% vs 적정 14%
  • 항상/자주 스트레스 56% vs 거의 없음 10%
  • 리더의 진정성을 신뢰하지 않음 52% vs 신뢰함 15%
  • 관리자 평가 하위 사분위 48% vs 상위 사분위 14%
  • 직장 내 갈등 경험 44% vs 미경험 19%

전체적으로는 37%가 일이 정신건강에 긍정적이라고, 25%가 부정적이라고 답했습니다(신체건강은 29% 대 24%). 하지만 장애가 있는 직원에서는 정신건강 부정 영향이 31%, 신체건강 부정 영향이 35%로 뛰었습니다. 주관적 감정 문항에서는 20%가 항상/자주 과도한 압박을, 25%가 탈진을 느낀다고 답했고, 공공부문과 돌봄·서비스 직군에서 특히 높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완전 재택근무자는 탈진·스트레스가 뚜렷이 낮은 대신 외로움은 높았습니다.

갈등 문제는 3년째 제자리입니다. 직장 내 갈등을 직접 겪었다는 응답은 25%로 2024년, 2025년과 동일했습니다. 유형별로는 무시·모욕 12%, 고성이나 격한 언쟁 9%, 언어폭력 8%, 보호속성에 따른 차별 5%. 장애가 있는 직원(34%)과 여성(28%)의 경험률이 더 높았습니다.

가장 무거운 숫자는 대응 방식입니다. 갈등을 겪은 사람의 51%가 ‘그냥 넘겼다’고 답했습니다. 관리자나 HR과 논의한 경우는 31%, 당사자와 비공식적으로 대화한 경우가 22%, 이직을 알아보기로 한 경우가 8%였습니다. 해결 여부도 32%만 완전 해결, 34% 부분 해결, 33%는 해결되지 않음이었습니다. HR 부서가 인지하는 갈등은 실제로 벌어지는 갈등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말할 통로가 없는 다섯 명 중 한 명

발언권 차원에서 반복 확인되는 숫자가 있습니다. 직원의 20%는 자기 의견을 표현할 어떤 통로도 없다고 답합니다. 아홉 번의 조사 내내 이 비율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흔한 통로는 관리자와의 1:1 면담(55%), 팀 미팅(45%), 직원 서베이(45%) 순이었고, 공공부문에서 접근성이 좋고 소규모 조직에서 나빴습니다.

통로가 있느냐 없느냐는 성과와 직결됩니다. 리포트는 통로가 하나라도 있는 집단과 전혀 없는 집단 사이에서 다섯 가지 성과 중 네 가지에서 뚜렷한 차이를 확인했습니다(자발적 노력에서는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반면 노조 가입 여부는 다섯 성과 중 네 가지에서 유의한 상관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노조원 중 노조에 가입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24%에 그쳤습니다. 발언권의 문제는 ‘대표 조직이 있는가’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말할 통로가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다만 관리자의 소통 품질 평가에는 경고등이 켜졌습니다. 팬데믹 기간 급격한 변화 속에서 소통에 집중하며 올라갔던 ‘의견을 구한다’, ‘제안에 반응한다’,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한다’, ‘정보를 알려 준다’ 항목의 순평가가 최근 조사에서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고, 리포트는 이를 “우려할 만한 지점”으로 명시했습니다. 관리자와 직원 대표 모두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항목은 공통적으로 ‘직원이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가’였습니다. 듣기는 하되 반영하지 않는 소통의 한계입니다.

HR 담당자를 위한 시사점

  • 리더십 예산의 무게중심을 ‘태도’에서 ‘육성 역량’으로 — 공정·존중은 75~78%로 이미 높습니다. 비어 있는 것은 피드백(57%), 학습 지원(57%), 성과 코칭(59%)입니다. 교육 설계를 소통 스킬에서 피드백 대화·성장 계획 수립·성과 면담 운영으로 옮기고, 그 역량을 관리자 평가에 반영하십시오.
  • ‘면담 없음’을 방치 신호로 읽으십시오 — 성과 면담이 아예 없는 15%, 그중 그것을 적절하다고 여기는 49%는 조용한 이탈의 전조입니다. 면담 실시율은 만족도 서베이보다 먼저 볼 수 있는 선행지표입니다.
  • AI는 도입률이 아니라 교육률로 관리하십시오 — 월 1회 이상 사용자의 66%가 무교육입니다. 도구 라이선스 예산과 교육 예산의 비율을 점검하고, 신뢰도(정확성 25%)를 고려해 검증 절차가 포함된 활용 가이드를 함께 배포해야 합니다.
  • 갈등은 ‘신고 건수’로 측정하지 마십시오 — 겪은 사람의 51%가 그냥 넘깁니다. 신고 건수가 적은 것은 갈등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익명 채널과 관리자의 어려운 대화 훈련을 함께 설계해야 실제 규모가 드러납니다.
  • 과잉자격과 성장 정체를 진단 항목에 넣으십시오 — 학사 이상 33%가 과잉자격을 느끼고, 승진 전망에 동의하는 비율은 36%뿐입니다. 채용은 성공했는데 배치가 실패한 경우를 찾아내는 문항이 필요합니다.
  • 목적(purpose)을 성과 변수로 취급하십시오 — 일의 의미는 다섯 가지 성과 전부에 영향을 미친 네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조직의 목적을 선언문으로 두지 말고, 직무기술서와 목표 설정 단계에서 각 역할이 그 목적에 어떻게 닿는지를 명시하는 편이 효과적입니다.

참고 자료